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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글

텅 빈 자리, 여전히 머무는 사랑

by 스노벨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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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노벨의 산문 습작 입니다.  사람이 떠난 자리는 생각보다 오래 머문다. 물건 하나, 습관 하나, 냄새 하나에도 그 사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시간 속에서 천천히 무너지는 삶의 조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슬픔에 잠긴 중년 남성이 가족 사진을 응시하는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방 내부 모습, 조용한 애도 분위기

 

가족을 잃은 공허함

그 사람의 자리가 비워진 날부터, 세상의 모든 소리는 조금씩 멀어졌다.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입술은 움직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잘 들리지 않았다.
집 안에 쌓여 있던 익숙한 것들—차분히 개켜진 이불, 식탁 위 반쯤 마른 꽃병, 리모컨이 항상 놓여 있던 자리에 남겨진 먼지 자국—그것들이 말없이 존재했고, 오히려 그 침묵이 모든 감정보다 더 날카로웠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단지 사랑하는 사람 하나를 보내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하루의 작은 루틴, 함께 웃고 울었던 계절의 기억, 그 사람을 위해 익혀 두었던 음식의 레시피, 그런 것들까지 천천히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건... 빈자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결 같은 것.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자는 안다. 그 말이 틀렸다는 걸.
괜찮아지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 사람 없는 식탁, 그 사람 없는 명절, 그 사람 없는 날씨와 시간에… 몸이 먼저 적응하고, 마음은 조용히 따라갈 뿐이다.

어떤 날은 울음조차 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날들이 더 무섭다.
그립다는 감정조차 무뎌진 마음은, 마치 감각을 잃은 손끝 같아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공허함만 툭, 떨어뜨린다.

그렇지만 그 공허함 속에서도 아주 가끔,
그 사람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땐 문득, 아직도 그 사람이 내 삶의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히 함께 걷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게 유일한 위로다.
다시 안아볼 수 없어도,
다시 이름을 불러줄 수 없어도,
이 공허함 속에 남겨진 자리는,
그 사람의 사랑이 마지막으로 스며든 자리라는 것을 안다.

 

 

 

 마무리글
그 사람은 이제 없지만, 그 사람의 자리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허함은 사랑의 반대말이 아니라, 그 사랑이 머물렀던 증거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천천히 그리움을 살아낸다.

 

 

 

작가: 스노벨의 마음을 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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