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산문은 형을 그리워하는 두사람의 마음을 담은 습작입니다. 언제부턴가 누군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집에는 저녁이 먼저 도착했다. 해가 지기 전에 그림자가 길어지고, 말이 줄어들고, 바람이 사람을 밀고 들어왔다. 외로움과 그리움 그 고요한 틈에,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살아냈다. 이 글은, 기다림이 시간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저녁이 내리는 집
바람이 부는 저녁이면, 아버지는 종종 마당 끝에 나가 앉았다. 흙길 끝, 대문과 밭 사이, 오래전에 녹이 슨 철제 의자에. 그 자리는 원래 형이 쓰던 자전거를 세워두던 자리였다. 자전거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 몇 해 전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로 쓸모를 잃은 바퀴 하나를 붙잡고 있다가, 어느 날 아버지가 조용히 가져다 불태웠다.
"덜컥거리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전거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나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거짓을 말할 때, 그 말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올지 알기에.
형이 사라진 건 어느 여름이었다.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간다. 그는 나보다 세 살 많았고, 나와는 달리 무언가를 빠르게, 그리고 자주 잃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떠났고, 그로부터 몇 번의 전화와 더 적은 편지들이 도착했다. 마지막 편지에는 손끝으로 접은 자국이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말하지 마. 다시 돌아올 거야. 틀림없이.'
그 문장을, 아버지는 읽지 못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으므로. 형의 글씨는 엉성했고, 잉크가 번져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조차도 어떤 암시였을까 싶다. 무엇인가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음을, 나는 왜 몰랐을까.
아버지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아침이면 밭으로 나가고, 해질 무렵이면 신문을 천천히 넘겼다. 형이 떠난 뒤로는 더더욱 말이 줄었다. 가끔은 내가 방학 때 집에 내려오면, 아버지가 이따금 불쑥 물었다.
"너는 혹시라도 연락받은 거 없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이내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기다림이라기보다는 받아들이지 못한 상실이었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도 모른 채, 그 자리를 계속 쳐다보는 사람의 눈. 마치 아직 그 자리에 형의 그림자라도 남아 있을까 봐.
그런 날에는 어머니가 자주 아버지를 부엌으로 데려가 말을 돌렸다.
“오늘은 감자전을 할까 해요.”
“마당의 호박이 많이 자랐더군.”
그 말들 사이사이에는 더 많은 말들이 들어 있었다. 다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뿐이다. 말은 때로 너무 무겁다.
가을 어느 날, 나는 아버지와 함께 창고를 정리했다. 오래된 곡괭이와 덧신, 형의 오래된 운동화가 나왔다. 아버지는 그것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발이 작았던 놈이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발은 내 것보다 컸다.
그날 밤, 아버지는 나를 마당으로 불렀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나는 가끔 꿈을 꾼다.”
그가 말했다.
“형이 돌아오는 꿈이지. 다 자라서, 어른이 돼서. 나한테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마당을 지나가는.”
그 꿈에서 아버지는 형의 뒷모습만 본다고 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마치 그 모습이 깨질까 봐 숨조차 참은 채로.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 구석에 아직도 놓아두고 있음을. 누군가의 빈자리는, 그 자리를 비워두는 것만으로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형은 돌아오지 않았다. 편지 한 장, 기척 하나도 없이.
그럼에도 아버지는 저녁이면 의자에 앉았다. 찬 바람이 불면 코끝을 찡그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도시로 돌아가기 전, 나는 조용히 마당의 의자에 앉아봤다. 앉아보니 그 자리가 형의 자리가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의 자리였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 자리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 자리는 차갑고 조용했다. 너무 많은 시간이, 너무 많은 무언가가 스며든 자리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밤, 아버지에게 물었다.
“왜 거기 앉으세요?”
아버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누군가 돌아올지도 모르지.”
마무리
지나간 시간이 무언가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어떤 자리는 그대로 남는다. 우리는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돌아오지 않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채, 그렇게 하루를 저문다. 마당 끝 의자에 앉아, 바람을 듣는 사람처럼.
작가:스노벨의 마음을 담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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